20180114 중고등부 제02공과 주께하듯하라 골3장22-25절.docx


2 공과

 

20180114 중고등부 제02공과 주께하듯하라 골322-25

 

제 목 : 주께 하듯 하라

본 문 : 골로새서 3 22-25

요 절 : (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유럽이나 미국에 가면 종종 Samaritan 이라는 이름이 병원에 붙어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의 영문 표기이지요.
왜 병원에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바로 모르는 사람이었고, 원수 민족이지만, 아프고 다친 사람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고쳐주었던 선한 마음의 그 이름을 기념하고자 함일 것입니다.

(
10: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인간관계를 해나가야 할지를 기억합시다.

1.
사람의 외모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자.
(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가끔 목욕탕에 가면 몸에 문신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덩치가 크고 외소한 사람도 있구요.
그런데 옷을 입고 나와서 애기를 하면 보통 사람, 목사, 외과의사 선생님 등 직업이 다양합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어떨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대해봐야 하고, 대화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2.
관계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자.
여행에서는 좋은 만남이 중요합니다.
이민자들의 직업은 이민 첫날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의 직업에 따라 결정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좋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게 만드는 것은
자기의 목적, 의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서로를 이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인맥, 휴먼네트워크 등 아무리 사람 자신 스스로 관계를 만들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 관계가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합니다.

3.
관계의 성공은, 서로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사람에게 하듯 하면 100% 실패합니다.
사람은 주면 받고 싶고, 내 입장으로만 이해합니다.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람의 관계의 성공의 주님의 명령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또한 주께 하듯 하기 위해서는 그 가운데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과 같이
우리도 이 사랑 먼저 받은 자로, 주께 감사하며 기뻐하는 심정으로
사람을 대할 때, 관계의 성공과, 그 인생의 성공을 위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자가 되어집니다.

주께 하듯 합시다. 사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읍시다. 외모로 판단치 맙시다.
2018
년 한해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선되는 말씀인 줄로 믿고 잘 행하여 승리하는 모든 학생, 선생님 되기를 소원합니다


Posted by 더큰그림
,

20160131 중고등부 제05공과 용서의동기 마18장21-35절.pdf




5 공과

 

20160131 중고등부 제05공과 용서의동기 마1821-35

 

제 목 : 용서와 용납 (용서의 동기)

본 문 : 마태복음 1821-35

요 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18:22)

 

[구호] 함께 용서 합시다! 구호준비-할렐루야! 할수있다-100! 하면된다-100! 하자하자-100!

 

ex.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상대성이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별마다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수험생에게의 1시간과 백수의 1시간은 그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죄에 대한 상대적 관점]을 통하여 용서에 대하여 알아 봅니다.

 

{말씀의 상대성} 易地思之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집합체입니다. 이 말씀을 두가지로 추려보면, OOO은 하라!, XXX은 하지마라! 로 나뉩니다. [하라는 것 하고, 하지말라는 것 하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게 되면 그 결과는 순종이 아니라 [상대를 정죄]하는 죄가 됩니다.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우리 함께 우리 속에 있는 들보를 찾읍시다. 내 들보를 먼저 찾고, 뽑아내는 일에 열심 냅시다. 상대방의 티는 그저 눈감아 주고, 가리워 주는 [용서를 통해 화목] 합시다.

 

{죄의 상대성} 용서 vs 용납

말씀 순종과 정죄가 상대적이듯이, 죄에 대하여도 상대적인 태도가 있습니다.

바로 용서와 용납입니다. 용서와 용납은 받아들여서 이해한다는 의미에서는 유사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상대방을 용서하는 것과 용납하는 것은, 외적으로 비슷하게 보입니다. 즉 속마음은 어떠하더라도 상대를 용납해 주면 상대방은 내가 용서한줄로 보일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용서-용납은 개인적인 일에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 죄에 대하여는 주의해야 할 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은 그 사랑으로 하는 용서는 내가 사랑을 실천할수 있고, 화목할수 있어서, 나와 상대방을 구원으로 이끌고 영생으로 인도할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용납은 죄를 묵인하고 죄를 나와 상대방 속에 그저 놓아 두는 일(방임)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담대하고 죄에 대하여 단호해야 합니다. 용납은 나의 옛모습(옛사람)으로 사는 삶입니다. 용서를 통해서 구원받은 자의 모습(새사람)으로 가진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삶 됩시다.

Posted by 더큰그림
,